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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님

상성 喪性 prologue  [깨비사자] 본문

깨비사자

상성 喪性 prologue  [깨비사자]

花無十日紅 화무십일홍 2016. 12. 13. 20:23

상성 喪性         

 

: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됨.

 

 

 

prologue.


반갑다. 나는 앞으로 1년간 너네들 담임을 맡게 된 김신 이라고 한다.”

3, 아직 봄 꽃도 피지 않았고, 거리에 장갑을 낀 사람들이 사라지지도 않았을 그 즈음에 첫 날이라 긴장을 했는지 원래 그렇게 말이 없는 아이였는지 모를 너와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김신의 이야기.

 

글쎄, 너를 만나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 잊어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냥 내 존재 자체가 너라는 사람이 만들어버린, 나를 버리고 너를 위해 만들어진 어떤 한 종류의 인형과도 같아졌으니까.

 

 

신에겐 가족이 있었다. 사랑해서 결혼 한 아내, 그리고 사랑해서 낳은 딸. 지금은 분명했던 사랑들이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조금도 자신을 이해 할 수 없었지만 너의 손을 잡아 끌거나, 네 옷을 벗기거나 그런 순간에는 누굴 이해 할 마음조차 없었다. 네 얼굴을 보면 항상 불안하고 우린 정말 큰일 났다 싶다가도 네가 나를 부르면 해 볼만 할 것 같아서 웃었다.

 

 

너를 처음 학생이 아닌 사랑의 상대로 생각하게 된 건 아마 너의 부모님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던 날 개학날과 얼마 멀지 않던 그 날에 내가 잠을 자던 도중 급하게 달려갔을 때 네가 나에게 안겨 울어서였다. 경건한 장소에서 그런 불순한 생각을 했다고 하면 신()들이 나를 욕할지도 모르겠다. 안긴 네가 따뜻했고, 너는 내 위로가 필요했고, 밤새 네 옆에서 손님들을 맞고, 학교로 돌아온 네가 선생님 감사했습니다.’ 라고 할 때는 내가 다 위로 받는 기분이었다.

 

 

남자에게 성적인 욕구를 느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관심도, 그게 가능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내 짧은 착각이었구나 를 알았다. 네가 느끼는 모든 작은 느낌 하나까지도 다 보였고 네 감정, 내 감정, 그저 수업시간에 눈빛만 마주쳐도 그냥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그랬다.

 

 

 

왕여의 이야기.

 

처음으로 선생님을 보았을 땐 아, 저 사람이 우리 반 담임이구나. 하는 생각. 정말 단순하고 그 반에 있던 아니 그 시간대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할 그런 생각만 가졌다. 선생님은 친절했고, 많은 아이들의 존경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었다. 자식자랑에 심취할 삼십대 중후반의 아빠들이 다 그러는 것처럼 수업시간이 남으면 딸이 노래 부르는 영상이나, 같이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이쁘지 우리 딸이야라고 했다.

 

 

근데 나는 이래도 되는 걸까. 삼촌이 담임선생님께도 연락을 드려야 한다고 해서 한 늦은 전화에도 한달음에 달려와 울고 있던 나를 세상 다 괜찮다는 듯이 안아주고 감싸주고 밤새 내 옆에서 위로를 자처해 주었을 때 그냥 막 날 끌어당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처럼 선생님께 반해버려서.

 

 

중학교 3학년 때 왕따를 당했다. 화장실에 가느라 두고 간 내 휴대전화에서 아이들이 발견한 검색기록 때문이었다. ‘쟤 게이래, 3반에 XXX좋아한데.’ 학교 전체가 뒤집어졌다. 내가 좋아했던 애의 부모님까지 학교에 와서 그 아이가 충격으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는 다고 했다. 서울로 이사를 왔다. 엄마는, 아빠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그저 아빠는 화가 난 것 같았고, 엄마는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그 상황에서도 정신과에 갔다는 그 애 걱정밖에 없었다.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일까. 나를 욕하고 다신 보기도 싫다고 할까, 선생님의 착한 심성에 차마 그렇게는 못하고 나를 설득하려 할까. 나를 걱정해줄 사람도 이제 아무도 없는데 그냥 한번 질러버릴까 하던 순간에 전화가 왔다.

새벽 한 시.

 

 여야, 미안한데 네가 너무 보고싶어.’

 

 

 

어떡해요. 선생님. 나 선생님의 가정에 위험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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