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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님

온도차이[깨비사자] 1~2 본문

깨비사자

온도차이[깨비사자] 1~2

花無十日紅 화무십일홍 2016. 12. 10. 23:16

우리가 그렇게 쉽게 끝날 인연이었었다면 나도 좋겠다. 이 씨발새끼야…”

 

 

  



 

네가 없을 때 나의 시간은 빠르고, 바쁘게 흘러갔다. 잠깐의 쉴 틈도, 숨 한번 돌릴 여유도 없이 연휴 철 차들이 가득 들어선 고속도로 마냥 빽빽했다. 그러면서 너를 차츰 있었던 것도 같았다. 하루에 너를 생각할만한 시간적 여유와 사실 우리가 기억할만한 별다른 추억이 있었나 싶었다.

 



너를 다시 본 순간 그건 비뚤어진 마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분명 너와 행복했고, 수많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감스럽게도 널 아직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1-

 





똑똑.

신이 여가 앉은 자리 칸막이를 두드렸다. 여가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신을 올려다 보았다.

 



변함 없으시네, 그 까칠한 성격.”

신은 달갑지 않은 표정을 하는 여에게 실망이라는 눈치였다. 이상하게 너를 보면 설레고 다시 우리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있나?”

 


없는데요.”

여가 단호한 말투로 다시 눈을 돌렸다. 신은 살짝 당황해서 주변 사원들의 눈치를 보았다. 다들 사장님 여기 내려오셔서 뭐하시나 하는 눈빛이었다.

 


없으면 시간 좀 내지?”

신은 굴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잘리면 책임지실 건가요?”

 


내가 여기 사장인데?”

 



“…..”

여가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챙겨 나갔다. 신은 싱글벙글 웃으며 여의 뒤를 따라갔다.

 



넌 한결 같이 커피점에만 오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셨다. 그리고 난 네 입맛엔 절대 맞지 않을 핫초코나 에이드 종류. 넌 날 애 같다고 비웃었지만 그래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행복한 기억들 중 하나였던 것 같았다.

 


왜 부른거.”

 

너 말이 금방 짧아진다.”

 


내 질문 못들었어?”

여는 회사를 나온 후로 단 한번도 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마주쳐야 할 이유도 없었다. 저 새낀 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내게 소홀히 한 놈이었고, 나는 피해자였으니까.

 


그냥, 반가워서.”

 

반가워 하지마, 난 여기 일하러 온 거지, 너 보러 온 거 아냐.”

 

그럼 구지 내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에 온 이유는 뭔데.”

 


너네 쪽에서 제시한 페이가 좋았어.”

정말이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고도 참 왕여다운 이유였다. 신은 잠시 그 페이를 누가 결정했는지 따지려다가 그만 두었다. 보아 하니 자신과 대화 할 의지도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널 10년이나 보았다.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신은 오랜만에 여유라는 것을 느꼈다. 찬 공기의 밖과 따뜻한 실내의 온도 차 때문에 생긴 물방울들이 창문에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듯 붙어있었다.

 


여도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안에 매달린 물방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밖에 지나가는 차가운 겨울의 것들을 보고 있었다.

 



 

지금 너와 나의 온도차이가 그랬다. 너는 꽁꽁 얼어버린 서울의 영하. 나는 혼자 너와 함께 맞을 봄을 준비하는 따뜻한 실내.

 

 


-2-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네가 곧 결혼을 할 거라는. 듣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 놈을 골수게이 거든.’ 하고 말할 뻔 했다. 흘려 듣고 오전 내내 널 보러 가지 않았는데 보고를 하러 들어온 비서가 손에 하얀 편지 봉투를 들고 있었다.

 



그건 뭐야?”

신이 보고서를 받아 들고 눈짓으로 봉투를 가르켰다.

 


아 이거요? 예쁘죠? 그 왜 사장님이 그때 스카우트제의 넣으실 때 강력하게 추천하셨던 왕여대리님 있잖아요. 그 분이 주신거에요.”

여는 사교성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간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어느새 회사 안의 거의 모든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따로 밥도 같이 먹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그게 무슨 편지냐고, 파티한대?”

혹시라도 정말 파티를 한다 그러면 와인이라도 하나 사 들고 낄 참이었다. 직원들은 별로 안 좋아할게 뻔하지만.

 



아뇨 결혼 하신데요.”

싸인을 하던 신의 손이 멈췄다. 그 자리에서 잉크가 번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아찔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네가? 네가 결혼을. 그것도 여자와. 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섰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내내 나는 울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나를 조금이라도 봐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알던 너는 정말 다 사라지고 없는 것 같았다.

 


이거 진짜 신부님이 직접 만든 거라구요?”

 

너무 예쁘다.. 대리님은 좋겠어요!”

 



신은 한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휴게실 한 가운데에서 곱게 접힌 청첩장을 나눠주며 환하게 웃는 여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가 휴게실 밖에 서 있던 신을 발견했다. 신은 눈이 마주치자 걸음을 돌려 다시 엘리베이터 쪽으로 돌아갔다.

 


이거요.”

익숙한 손이 불쑥 신의 앞에 나타났다.

 


저 결혼하거든요. 사장님도 와주세요.”

넌 정말 나에게 왜 이러는 걸까.

 



온도차이






내가 왜 거길 가야 하는데?”

 

어차피사장님이랑 나는 이제 아무런 사이도 아니잖아요.”

직원들도 많이 올 건데.

 



정말 아무런 감정도 없었던 걸까. 이건 남자의 본능 같은 것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머리 끝까지 불타오르는 게 느껴져서.

 



띵동.

침묵에 가려진 시간 사이로 신은 여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어디서. 혼자 도도한 척, 고상한 척이야.

 


!”

뭣도 모르고 그저 힘의 악력에 의해 끌려온 여는 닫치려는 문을 막아보려 했지만 그 앞을 신이 막아섰다.

 


단 한 순간도 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 적이 없어?”

앞 뒤 맥락을 다 잘라먹은 말이라도 여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없는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눈동자와 정말 단 한 박자라도 빨라지지 않은 것 같은 여의 심장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너 설마…”

여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인상을 찡그렸다. 비에 젖은 강아지 같은 눈을 한 신을 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너 아직도 나 못 잊었냐? 미련하네.”

 



신은 공허해졌다. 마음이 공허해지자 덩달아 몸에 들어 있던 힘도 공허해지기 시작했다. 여는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었다. 신은 이제 정말 자신이 알던 그 왕여가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다.

 




여는 신에게서 벗어나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다시 눌렀다. 남겨진 신의 등 뒤로 다시 그 문을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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