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님
神[신] 깨비사자 7~8 본문
神
간신의 말에 자신의 정인을 죽인 왕.
900년 불멸의 삶 동안 자신을 죽인 주군만을 그리워한 무사.
그리고 신은 생각했다.
불멸의 삶을 끝내지 않겠다고.
-7-
너는 혼란스러워 했고, 나는 간절해졌다.
“신아 이게 무슨 꽃인지 아느냐.”
햇살은 눈이 부시게 찬란하고 그 안에 서 있던 누군가는 더욱 찬란하게 보였다.
“무슨 꽃 입니까.”
허구한 날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이 무슨 꽃을 보았겠는가. 간혹 망자의 피가 튀긴 벌판 위 들꽃을 보았어도 그 이름 모르고 지나칠 사람이었다.
“메밀꽃이다.”
한 걸음 차이 앞장서 있던 여가 발치에 핀 메밀꽃 한 송이를 꺾었다. 순간 제 명을 빼앗긴 그 꽃은 굉장히 억울해 보였지만 여전히 향기를 뿌리고 있었다.
“메밀꽃의 꽃말이 무엇인지는 아느냐.”
뒤를 돌아본 여는 햇살에 찡그린 신의 얼굴이 여전히 답을 모르는 것을 알았다. 꽃에 대한 신의 무지함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연인이다.”
여가 환하게 웃으며 꺾은 꽃을 신에게 건냈다. 순간 들판을 스치고 지나가는 산들바람이 신과 여의 곁에도 지나갔다. 말 없이 꽃을 받아 든 신은 꽃을 받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뒤 늦게 알아차렸다.
“너는 끝까지 말이 없을 계획인 것 같으니 내가 하마, 신아, 내 연인이 되어다오.”
자신 있게 꽃을 건내며 위엄 있는 모습을 보일 때는 언제고 지금은 혹시라도 거절 받을까 걱정하는 눈빛이 뻔히 보였다. 신은 손에 들린 꽃과 눈 앞에 서 있는 꽃을 번갈아 보았다.
“나와 영원을 약속해달란 말이다.”
신은 한 걸음 차이를 좁혀 섰다. 여의 얼굴이 궁금증과 불안으로 가득했다.
“약조…하겠습니다. 주군.”
꽃을 쥔 신의 손이 여의 뒷통수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신은 여가 동그랗게 뜬 눈을 감을 때까지 마주 댄 입술을 움직이지도 또 자신의 눈을 감지도 않았다. 이윽고 여가 안도한 눈빛으로 눈을 감자 다른 손으로는 여의 허리를 받치고 오로지 해와, 꽃과, 바람만 지켜본 입맞춤을 이어나갔다.
-8-
사이가 먼 탁자가 아닌 거실의 작은 좌식탁자에 앉았다. 여는 독한 술을 연거푸 마시는 신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만 마시는 게 어때.”
여가 술잔을 다시 채우려는 신의 손을 붙잡았다.
“아니야.”
신이 여의 손을 뿌리치고 빈 술잔을 다시 가득 채웠다. 한숨을 내뱉은 여가 팔짱을 꼬고 불만스러운 얼굴로 신을 바라보았다.
‘예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맨 정신으로는 못하겠어.’
그 말로 시작된 술과의 전쟁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었다. 신은 잔을 반쯤 비우고 여를 쳐다보았다. 이제야 말을 하려나 생각한 여가 어서 말을 해보라며 입을 떼려 했지만 신이 먼저 말문을 막고 또 다시 아니라고 말했다.
“언제쯤 말을 해줄 생각인 건데, 오늘 못 할 것 같으면 나 먼저 들어가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여를 신이 붙잡았다. 신은 고개를 뒤로 뉘에 쇼파에 기댔다.
“…오래 전 정인과 한 약조가 있었어.”
취중진담을 시작한 신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원을 함께하기로 했었지..”
신은 찬란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이상하게 그리 멀지 않았던 기분이었다.
“나는 죽는 날까지 그 약조를 지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은 다시 자리에 주저 앉은 여에게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았던 것 같다고 느낀 건 네가 지금 여기 있어서 일까.
“아니었어.”
신의 눈에 쓸쓸하게만 보이는 눈물이 고였다.
“….사자와의 계약은 지키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신의 눈이 감기고 눈물 한 방울이 신의 얼굴을 따라 흘렀다. 신은 잠들어 버렸다. 신에게 손을 붙잡힌 채 있던 여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는 표정이었다.
“나도 해줄 말이 있는데, 맨정신으로는 못하겠다.”
여가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신이 남긴 술을 마셨다. 왜 네가 마신 술을 뜨겁고 까슬할까. 너는 그런 인생을 살아온 걸까.
“미안해..김신…”
술잔을 내려놓고 다시 신에게 몸을 돌린 여는 잠든 채로도 울고 있는 신의 마음을 보았다.
“무서웠어…너가 날 여전히 사랑해주지 않을까 봐…”
여는 기억했다. 신과 함께 메밀꽃이 만발했던 그날의 입맞춤을.
“내가 기억을 잃었다고 거짓말을 한 건, 너를 죽인 나를 네가 미워할까 봐, 여전히 나를 원망할까 봐 그랬어…”
여가 울음을 참으며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괴로운 건 김신이고, 나쁜 것은 나야.
“네가 나를 다 잊은 줄 알았어….”
네가 날 알아봤을 때. 그걸로 힘들어 했을 때. 나는 정말로 무서웠어.
“…사랑해.”
여가 짙은 알코올향을 풍기는 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잠든 얼굴을 보는데 너는 이대로 그만 괴로웠으면 했다. 나는 아직도 두려웠고 네 분노가 무서웠다.
그래서 너가 깨어난 다음 날에 나는 그 집에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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