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님
神[신] 깨비사자 9~10 본문
神 신
간신의 말에 자신의 정인을 죽인 왕.
900년 불멸의 삶 동안 자신을 죽인 주군만을 그리워한 무사.
그리고 신은 생각했다.
불멸의 삶을 끝내지 않겠다고.
-9-
도망쳤다.
결국 난 네 옆에 있을 염치라는 것이 없어서.
맑은 빛이 눈 틈 사이로 흘러 들어왔다. 신은 부스스하게 고개를 들었다. 어제 술을 마시던 그 자리 그대로였다. 허전한 기분이 들어 빈 손을 내려다 보는데 이상하게 그 손만 유난히도 기억에 뚜렷했다.
“여…”
신이 잔뜩 잠긴 목소리로 여를 찾았다. 공기가 차가웠다. 신은 고개를 돌려 누군가의 흔적을 찾았다. 이상한 적막에 신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어지럼증과 함께 눈 앞을 흐리게 만드는 두통이 신의 움직임을 저지했다.
‘미안해 김신.’
머리를 부여잡은 신의 기억 속으로 여의 목소리들이 가득 들어왔다. 그가 말한 모든 진실과 마주 잡았던 손, 그리고 따뜻했던 입술, 그리고..
신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거실을 빠져나갔다. 간절한 심정이 되어 여의 방문을 열었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아주 쓰지 않은지 오래 된 공간처럼 차갑고, 깔끔했던 누군가의 흔적 대신 급하게 떠난 흠집만이 가득했다. 신의 눈이 갈 곳을 잃고 헤매었다. 방을 버려두고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새벽이슬로 축축해진 잔디들이 신의 맨 발을 간지럽게 했다.
굳게 닫혀있는 정문이 보였다.
‘네가 저기로 가버린 걸까.’
믿고 싶지 않았다. 이제 겨우 찾았는데 이제 다시 삶의 이유를 되찾았는데 이렇게 네가 가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파랗던 하늘에 짙게 먹구름이 끼고 신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10
호숫가에 앉아있던 여의 모자 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장마가 그치나 했더니 다시 시작이구나’
여는 고개를 더욱 숙여 떨어지는 비들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게 다 김신의 눈물인 것 같아 보기가 힘들었다.
‘왜 신(神)은 나에게 신을 내리셔서 사랑과 고통을 주십니까’.’
애써 눈 앞을 가려보아도 손등 위에, 어깨 위에 떨어지는 김신의 원망은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900년간 김신을 찾지 않았다. 망자의 기록에서도 찾지 않았다. 대신 여는 죽은 날 찾아온 이름 모를 신(神)이 여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느냐는 말과 함께 기억을 잃게 해준다는 차를 주었을 때 김신을 떠올렸다. 그마저도 잊게 되는 것일까. 자신의 손으로 죽였지만 항상 미안했던 사람이었다. 그 날 여는 차를 마시지 않았다. 차를 마신 척 찻물을 옷 소매로 흘려버리고 찻잔만 돌려주었다.
자신의 죄를 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은 김신을 기억해야 했고 또 평생 속죄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 후로 여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
저승사자.
같은 이름을 가진 자가 수천, 아니면 그것보다도 더 많았다. 그 중에 온전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오직 여 뿐이었다. 그때부터 여는 시간을 계산하지 않았다. 망자들의 시간만이 그가 기억하는 시간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여는 자신의 눈을 믿지 않았다. 김신을 보았다. 오래된 기억이었지만 너무나도 선명했고 아주 멀리 보았지만 신만이 눈에 들어왔다.
‘왜 네가…’
고민하던 순간은 금방 답을 찾았다. 신(神)에게 두 번째 삶을 받은 것은 여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신도 자신과 같이 인간과는 다르고 그렇다고 신(神)도 아닌 존재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멀리서만 지켜보았다. 김신은 당연히 차를 마셨을 것이라 생각했다. 괴로움이 많았을 무신의 삶이었고 한이 얽혔을 억울한 죽음이었다.
그때부터 여의 시간은 다시 흘렀다. 일년..이년.. 그러던 순간 신은 갑자기 사라졌다. 어느 곳에서도 신의 발자국 하나라도 찾을 수가 없었다. 여는 다시 절망에 빠져들었다. 칠흙 같은 어둠에 버려지고 자비 없는 시간이 매정하게 지나갔다. 신의 흔적을 쫒으며 지낸 세월이 300년. 여는 마음 속에만 신을 두고 있었다. 다른 사자들과 다를 바 없이 일을 했고 기억을 잊은 것처럼 행동했으며 밤에는 떠오르는 악몽에 자책을 느꼈다.
“도깨비?”
그리고 너를 다시 본 날. 분명 신(神)님이 점지하셨을 그 운명에 나는 다시 신(神)의 꼭두각시가 되어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멀리 있어서 알지 못했다.
네가 도깨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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