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깨비사자 (27)
신님
나의. 핸드폰의 무성의한 기본 벨 소리가 울리자 신은 눈을 감은 채 전화를 받았다. [이사님, 왕여씨를 찾았습니다. 굳게 감겨있던 신의 눈이 천천히 떠지고 그 안에 밤의 불빛을 반사시키는 눈동자가 보였다. “…잡았어?” [그건 아직… 죄송합니다.] 빠득- 신이 이를 가는 소리가 텅 빈 사무실 안에 울렸다. “삼십 분 안에 내 방으로 데려와” [예 알겠습니다.] 신은 책상 위 자신의 권총 옆에 놓인 여의 사진이 든 액자를 집어 들었다. 네가 환하게 웃는 걸 본 날이 까마득하네. “만약 놓치면.. 알지?” [예.] “네 목이 잘리던가, 걔 발목이 잘리던가 할꺼야.” 김신은 목을 자르거나 발목을 자르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행동할 사람이었다. […] “수고해.” 마지막까지 일정한 톤으로 신은 전화를 끊었..
당신이 너무 예뻐서. “아니! 어쩐 일이십니까 김이사님.” 오과장이 야단스럽게 달려와서는 신에게 허리를 굽혔다. 신은 공손하게 마주 인사하고 눈만 빼꼼 뜨고 있는 여의 자리 쪽으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아니 뭐.. 다들 잘 있으신지 해서 와봤습니다.” 신이 헛기침을 흠흠 하며 여의 자리에 슬쩍 반 접힌 종이 쪽지를 던졌다. 여도 사람들 눈치를 쓱 보다가 쪽지를 주먹 안에 쥐었다. “저희야 뭐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예 뭐 그렇다면. 신은 그럼 수고들 하라고 말 한 후에 자기 사무실로 사라졌다. 오과장은 직원들에게 돌아다니며 ‘나 뭐 실수 한 거 없는 것 같지?’ 하고 일일이 물어보고 다녔다. 여는 손에 쥔 쪽지를 몰래 펼쳤다. 안에는 김신을 닮은 정갈한 글씨가 있었다. [오늘 점심 내 사무실] 여는 ..
神 신 간신의 말에 자신의 정인을 죽인 왕. 900년 불멸의 삶 동안 자신을 죽인 주군만을 그리워한 무사. 그리고 신은 생각했다. 불멸의 삶을 끝내지 않겠다고. 죽은 자에게 심장이 뛴다는 표현은 걸맞지 않았다.그래서 여는 심장이 욱신거린다고 생각했다.누군가 죽어버린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고 힘차게 두드리는 느낌이었다 -13- “꼭 무사히 돌아오거라.” 왕이 신하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게 다였지만 안으로는 많은 말들을 전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다 알기에 신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조아리고 병사들 쪽으로 걸어갔다. 출정하는 병사들의 뒤를 하염없이 보고 있는 여의 뒤로 유유히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김신 그 자가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증거이옵니다.” 여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신하..
부디 돌아와요. 나의 첫사랑. 나의 김신 오랜만에 너와 나란히 앉아 취하던 밤이 생각났다. 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미 오래 전 내 곁에서 떠나버린 네가 그리웠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네 마지막 부탁 대로 그 아이의 기억을 지웠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도 확인 했다. 그 때에는 네가 원하는 것이었다면 뭐든 했었다. 질투를 느낄 틈이란 게 있었을까. 나는 그저 네가 마지막을 부탁하는 사람이 ‘나’ 라는 것에 기뻤다. “고마웠다.” 내가 차를 따르고 있을 때 넌 그렇게 말했다. 천 년 가까이 살아온 우리에게 그리고 그 천 년의 삶을 마무리 하는 너에게 죽음이란 건, 이 차를 받아 마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다. 이상하게 나는 담담했고 너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자주 싸우긴 했..
神 간신의 말에 자신의 정인을 죽인 왕.900년 불멸의 삶 동안 자신을 죽인 주군만을 그리워한 무사. 그리고 신은 생각했다. 불멸의 삶을 끝내지 않겠다고. -11- 너는 꼭 나에게서 멀어지려고만 하시는구나. 너는 꼭 나에게서 잊히시려고만 하시는구나. 신은 계속해서 여의 방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가를 반복했다. 아무리 여를 생각하고 다시 곱씹어도 문을 열고 보이는 건 텅 비어버린 방 뿐이었다. “제발…제발!” 이렇게 간절해 본 순간이 또 있었을까. 현관부터 여의 방문 앞 까지 신의 흘리고 지나간 흙이며 축축한 잔디들이 길을 이루고 있었다. 두 눈을 감고 여를 생각하던 신은 다시 방 문을 열었다. 이번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머릿속이 하나도 정리가 되질 않아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낼 정신이 없었다. 어..
666기념 떡글 “도깨비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진실게임!” 많이 취해도 너무 많이 취했지 싶었다. 맥주 두 캔에 이성과 육체의 교섭을 끊어버리는 주제에 오늘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캐나다에서 도수 높은 위스키를 사왔다. 여는 혀를 쯧쯧 차며 얌전하게 제 술잔을 비웠다. “무례한 저승사자! 너…” 말꼬리를 늘이고 한참을 망설이던 주정뱅이가 입을 열었다. “동정이지?” 왓? 파든? 여가 켁켁거리며 기침을 하자 덕화가 휴지를 통째로 건네주었다. 신은 바보처럼 웃으며 자기가 맞췄다고 신이 나서 여를 놀리기 바빴다. “그것도 못 해 보고… 키스는 해봤냐?” 신이 하하 웃으며 아무 말 없이 신을 노려보고 있는 여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덕화의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키스도 못 해 봤나 봐.” 덕화는 여..
그들의 결혼엔 이중성이 존재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정상적이며 서로의 권력과 미래에 대한 든든한 투자였지만 사실 그 내면은 추악하고 더러웠다. 그것의 예시로 이중결혼, 근친, 내연, 폭력성이 침묵에 가려져 있었다. 신이 이 집에 온건 그 추악함의 사생아, 아마 또다시 그 추악함의 희생양이 될 이 집 도련님을 그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기차로 세시간 차로 두 시간, 다시 산길을 따라 한 시간. 꼬박 여섯 시간을 이동해 이곳까지 왔다. 비닐을 덮어둔 가방을 문 계단 위에 올려두고 비옷에 달린 모자를 뒤로 넘겼다. 비가 아슬아슬하게 내려서 처마가 막아주지 못한 모자 안으로 빗물이 고였다. 축축히 젖은 손으로 초인종을 누르자 기대했던 맑은 종소리가 아닌 물먹은 기계가 치익치익하고 울렸다. 세 번을..
상성 喪性 :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됨. prologue. “반갑다. 나는 앞으로 1년간 너네들 담임을 맡게 된 김신 이라고 한다.” 3월, 아직 봄 꽃도 피지 않았고, 거리에 장갑을 낀 사람들이 사라지지도 않았을 그 즈음에 첫 날이라 긴장을 했는지 원래 그렇게 말이 없는 아이였는지 모를 너와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김신의 이야기. 글쎄, 너를 만나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 잊어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냥 내 존재 자체가 너라는 사람이 만들어버린, 나를 버리고 너를 위해 만들어진 어떤 한 종류의 인형과도 같아졌으니까. 신에겐 가족이 있었다. 사랑해서 결혼 한 아내, 그리고 사랑해서 낳은 딸. 지금은 분명했던 사랑들이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
프롤로그. “그렇게 좋냐.” 여는 창백해진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힘들긴 정말 힘들었는지 평소엔 빨간 립스틱이라도 바른 줄 알았던 입술이 새하얗게 질려 돌아오질 않았다. “응, 좋아.” 신은 그런 여의 옆에 앉아서 잠든 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행복에 겨운 얼굴이었다. 바보같이 웃으며 여와 아기를 번갈아 바라보는 신의 모습에 여도 어이를 상실한 웃음이 세어 나왔다. 설마 내가 저 놈이랑 애를 낳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신은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려 아기용 침대에 눕혔다. 아기는 잠깐 몸을 뒤척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깨지 않고 다시 잠들었다. “수고했다, 부인.” “누가! 니! 부인이야!” 여는 기력이 떨어진 주먹으로 최대한 힘껏 신의 팔뚝을 때렸다. 신은 그래도 좋았다. -5년 후- 1.김신vs김..
시험 이제 하루도 아니고 몇 시간 남은 신님이 팔로444에 걸려서 쓰는 시험성적과 맞바꾼 떡….. 오메가버스 세계관. 여는 다급하게 서랍을 뒤졌다. 흰 약통을 찾자마자 뚜껑을 열었지만 남아있는 약이 한 알도 없었다. 여는 아찔하게 느껴져 오는 위험에 혹시라도 남아 있는 약이 있을까 싶어 코드 주머니를 뒤집어 깠다. 젠장. 당연히 그 안에 약이 떨어진걸 알고 급하게 집까지 온 것인데 다시 찾아 봤자 있을 리가 없었다.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오메가인 것을 하루에 약 두 알씩 꼬박꼬박 먹어가며 감춰왔는데 이제 와서 그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었다. “나 왔다~.” 거실에서 망할 김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머리 끝까지 온몸을 지배하며 여의 코 끝으로 알파의 페로몬이 훅 끼쳐..